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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눈을 뜨다...

타인의 흔적/그대가 머무는 그곳엔...

by 이도화 (비닮은수채화) 2011. 9. 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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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지다

계속 울려대는 휴대폰을 끄고 경희궁터를 터벅터벅 걸었다.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니 뭉게구름만 무심히 흘러가고 있었다. 공원 한쪽에 참새 다섯 마리가 놀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멀거니 앉아서 보고 있는데, 신나게 놀던 참새 한 마리가 목이 마른지 수돗가를 기웃거렸다. 수도꼭지를 한참 바라보고 있는 참새가 귀여워서 카메라의 포커스를 맞추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방울아, 제발 떨어져다오!’
살다보면 종종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지곤 한다. 꼭꼭 잠겨 있던 수도꼭지에서 물 한 방울이 떨어졌고, 참새는 날렵하게 날아올라 물을 마셨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슬로우 비디오를 보듯 참새의 동작 하나 하나가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빨려 들어왔다. 짧은 순간이지만 긴 여운이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았다.

‘갈증. 목이 마르다는 것은 삶을 향한 몸부림이 아닌가!’  
순간,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오랫동안 가슴속에서 침묵하던 그 무언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2003.4 서울 경희궁터

프랑스의 유명한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 브레송은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에 양보하기 위해서다.”라고 했다. 참새의 갈증을 통해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목마름과 삶을 향한 몸무림을 나는 마음으로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당시 지쳐있던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에 보았던 것과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그 다음부터 세상이 달라보였다. 집밖을 나서면 아파트 화단에 꽃들이 인사를 하고 발밑에 있던 작은 생명들이 말을 건네 왔다.

-즐거운 일상으로 돌아온 사진

생명을 찾아 나서면서 무심코 길거리를 지나 칠 때에도 눈은 시멘트 바닥에 돋아난 풀 한포기, 봄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연둣빛 새순을 더듬는다. 그들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눈빛이 따스해진다. 그 따뜻해진 눈빛을 통해 세상의 작고 여린 것들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열린 것이다.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던 사진작업이 다시 즐거운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비 내리던 날,
옷 젖지 않으려 바삐 가다가
문득 눈길을 붙잡는 풍경.

주르르 미끄럼 타고 내려와
풀대위에 알알이 맺힌 보석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는 이 순간,
내 마음은 세상에서 제일 부자.





낡은 화장실 안을
누가 자꾸 쳐다보는 것 같다.

작은 창문 방충만 너머로
기웃거리는 담쟁이 넝쿨.

무엇이 그리 궁금할까?
고 녀석들, 볼 테면 실컷 봐라!





“솔 라 솔 도도”
장마가 지나간 파란 하늘에
제비들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듭니다.

“지지배배 지지배”
엄마보다 높은 음자리에 앉은 어린 제비들이
더욱 신이나 푸른 여름을 노래합니다.



-모든 생명은 다 귀하다

생명의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경남 산청의 조그만 암자에서 스님으로부터 감동적인 이야기 한편을 들었다.
“매한테 쫓기던 비둘기가 수행자에게 살려달라고 간청하였다. 수행자는 매더러 왜 약한 생명을 해치려하느냐며 꾸짖었다. 매는 비둘기를 먹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비둘기도 생명이지만 나도 생명이라며 자기 생명을 어떻게 할 것 이냐며 수행자에게 되물었다. 수행자는 비둘기 대신 자기 살을 떼어주겠다면서 허벅지살을 떼어내 저울에 달았다. 저울이 비둘기 쪽으로 기울어졌다. 수행자는 다른 쪽 허벅지살을 보태 저울에 달았지만 이번에도 비둘기 쪽으로 기울었다. 할 수없이 수행자는 저울에 올라서자 그때서야 저울이 균형을 이뤘다.”

부처님의 전생을 다룬 ‘백유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생명을 소재로 작업하던 내게 이 이야기는 큰 감동을 주었다. 한 줌도 안 되는 작은 새의 생명도 사람의 생명처럼 소중하기가 다를 바 없고 그 작은 생명 안에서 온 우주가 담겨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 것이다.    



2005.2  충남 부석사

손바닥에 땅콩을 부수어 놓고 손을 쭉 내밀자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곤줄박이가 손바닥에 살며시 내려앉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긴장이 되었습니다.
새도 긴장을 했는지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곧이어 가녀린 무게감과 땅콩을 쪼아 먹는 몸놀림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져왔습니다.

이렇게 경계와 긴장을 넘어
자연과 사람이 마음을 주고받으며 친구 하는 세상이라면 좋겠습니다.




막내아이 학교과제로 베란다에서 화분에다 함께 봉숭아와 나팔꽃씨를 심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어느 휴일 아침, 아이의 함성 소리를 따라 베란다에 나가보니 배수구 한구석에서 봉숭아가 꽃을 피운 것이 아닌가. 화분에서 쓸려 나온 씨앗이 배수구에 몸을 의지한 채 한두 점 흙을 모아 꽃을 피운 것이다. 지독한 생명의지에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2007. 일산


간신히
배수구에 기대어
쓸려오는 한 줌의 흙을 모아

마침내
꽃을 피운

가엽고
미안하고
고마운
봉숭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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