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택을 믿고 싶었으나
끝내 가을을 배웅해야만 했다
잡고 싶었던 절기 앞에서 맞닿은 흰 벽
네 마음에서 내리는 눈을 보았다
한 겨울 혹한에 온기 불어넣을 자신 없는 내가
네가 물어오지도 못하는 말에 애써 대답했을 때
담쟁이 넝쿨은 흰 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몇 잎 남지 않은 줄기에서 뻗은
천 개의 손이 벽을 붙잡고 있었다
천 개의 눈을 갖지 못한 나는
잡는 것에 집착하다가
쓰러져가는 슬레이트 집 한 채만 봤을 뿐
뒷마당 텃밭과
앞마당 산수유나무와
마루에 내려앉는 햇살은 보지 못했다
가을이 그리는 담쟁이 벽화
관세음보살의 미소를 잡는다.
시인 ᆢ김 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