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정부/ 문동만
다시 저 사내
아내는 아파 드러누웠고 잠시 아내의 동태를 살피러 집에 들른 것
어떤 남자가 양푼에 식은밥을 비벼 먹다가
그 터지는 볼로 나를 쳐다본다 그래 그렇지 오랜 세월
아내의 정부였다는 저 남자 늘 비닐봉다리를 가방처럼
들고 다니며 옛 여자의 냉장고를 채워주는 게 업이라는 사람
평생 조적공으로 밥을 벌어먹었고
시멘트가루 탓인지 담배 탓인지 목구멍에 암덩어리를 달고서야
일도 담배도 놓았다는 저 사내다
늘 성실했으나 사기꾼들에게 거덜 났던 사내다 아픈
옛 여자를 위해 공양인 양 쌀죽을 쑤어 바치고
잔반을 털어 비벼 늦은 점심을 때우고 간다 온다 말없이
문을 잠그고 돌아가는 이 오래보는 삽화의 주인공
나도 이 한낮 그처럼 쓸쓸하여 그가 앉았던 식탁을 서성거린다
개수대는 밥풀 하나 없이 말끔하고 아내는 잠 깊고 그러니
나는 사랑의 무위도식자로 그 행적에 질투하며 순종하고 마는데
그가 되돌아가는 긴 내리막길에 삐걱거리는 뼈마디에
가벼운 보자기에 순종하고 마는데 내 원하는대로 해주지
아내의 정부! 이 딴 순애일랑 내 못 본 체 할 것이니
오래오래 두고두고 즐기시지
- 시집『그네』(2009,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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