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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굽 없는 신발이다....

타인의 흔적/시가있는 언덕배기엔...

by 이도화 (비닮은수채화) 2010. 3. 23.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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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뾰족 구두로 똑, 똑 소리 나게 걸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신발 굽이 낮아진다

그저 높낮이 없이 바닥이 평평하고

언제 끌고 나가도 군말 없이 따라 오는

편안한 신발이 좋다.

 

내가 콕,콕 땅을 후비며 걸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헤지게 했는지

또닥거리며 걸었을 때,

또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가슴 저리게 울렸을지

굽을 낮추면서 알겠다.

신발이 닳아 저절로 익숙해진 낮은 굽은

굽 높은 신발이 얼마나 끄덕 거리면서

흔들흔들 살아가는지 말해준다.

 

이제 나는

온들 간들 소리 없고 발자국도 남기지 않는

햐얀 고무신이고 싶다.

어쩌다 작은 발이 잠깐 다녀올 때 쏘옥 신을 수 있고

큰 발이 꺾어 신어도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나는 굽이 없는 신발이다.

 

                                                  문 차 숙


- 시집 『나는 굽 없는 신발이다』(2010. 문학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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