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법정
나는 금년에 봄을 세 번 맞이한 셈이다. 첫 번째 봄은 부겐빌리아가 불꽃처럼 피어오르던 태평양 연안의 캘리포니아에서였고, 두 번째 봄은 산수유를 시작으로 진달래와 산벚꽃과 철쭉이 눈부시도록 피어난 조계산에서였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이 두메산골의 오두막에서 무리지어 피어난 민들레와 진달래 꽃사태를 맞은 것이다.
올 봄은 내게 참으로 고마운 시절 인연을 안겨주었다. 순수하게 홀로 있는 시간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해 주었다.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는 말씀이 진실임을 터득하였다. 홀로 있다는 것은,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며 자유롭고 홀가분하고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서 당당하게 있음을 뜻한다. 불일암에서 지낸 몇 년보다도 훨씬 신선하고 즐겁고 복된 나날을 지낸 수 있어 고마웠다.
살만큼 살다가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될 때, 할 수 있다면 이런 오두막에서 이다음 생으로 옮아가고 싶다. 사람이 많이 꼬이는 절간에서는 마음 놓고 눈을 감을 수도 없다. 죽은 후의 치다꺼리는 또 얼마나 번거롭고 폐스러운가.
나는 이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두메산골의 오두막에서, 이다음 생에는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앞뒤가 훤칠하게 트인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자 원을 세웠다. 그 원이 이루어지도록 오늘을 알차게 살아야겠다.
- 산문집 「봄 여름 가을 겨울」 (2001,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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