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일이다. 나는 어느 조그만 변두리 중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그때 내 자리는 어떤 여선생님의 건너편이었는데, 우리 사이에는 낡은 철제 책상이 두 개, 그리고 그 경계선쯤 되는 곳에 크리스털 꽃병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흰 편이었고 치열은 아주 가지런했다. 소리 없이 웃는 모습이 소녀처럼 해사했다. 그 크리스털 꽃병 같았다. 나는 가끔 꽃병 너머로 그녀쪽을 건너다보았다. 그 때마다 움직이고 있는 그녀의 희고 가냘픈 손이 나의 시선으로 들어오곤 했다.
색종이로 별을 접고 있었다. 공책 한 칸 넓이만큼씩 잘라 놓은 색종이를 오각형이 되게 요리조리 접었다. 접기가 끝나면 손톱끝으로 다섯 개의 귀를 살리면서 허리 부분을 살작 눌러 주면 금세 살아 통통한 예쁜 별이 태어나는 것이었다.
어떤 종이는 손가락 넓이만큼, 또 어떤 종이는 대나무자의 넓이만큼 잘랐는데 그렇게 하면 그만큼 큰 별이 되었다. 그녀의 책상은 언제나 색종이가 색색으로 널려져 있었다.
색종이가 없을 때는 낡은 잡지의 화보를 잘라서 별을 접기도 하고, 그것도 없을 때는 상품 선전 광고지로 대신했다. 아무리 쓸모 없는 종이라도 그녀의 손에만 들어가면 요술처럼 초색이 찬란한 별이 되곤 하는것이 아주 신기했다.
별사탕을 봉지째 터뜨려 놓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좁지 않은 책상 위에는 언제나 오색이 영롱한 종이 별들로 가득했다. 아니, 별이 가득한 곳은 책상만이 아니었다. 서랍 속이 그러했고, 도시락 가방 속이 그러했으며, 그녀의 코트 주머니 속이 또 그러했다.
아무 데나 그처럼 별이 흔했던 것은 그녀가 별을 접는 데 장소나 시간 같은 것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였다. 병원 대합실이나 전철역 나무 의자이거나 틈만 나면 주머니에서 색종이를 꺼내서는 또 별을 접었다.
별을 접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마치 피터팬 영화를 보고 있는 듯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환상의 나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천사의 하얀 손이 움직인다. 그 손이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무수히 반짝이는 별무리들이 쏟아지고 그리고 그 별무리 사이를 하늘 잠자리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요정들이 날아다닌다.
그래서 그녀가 별을 접는 것을 보고 있다가 내려야 할 정거장도 잊어버리고는 두 정거장이나 지나고서야 허둥대며 내리는 그런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서 만든 별이지만 그것에 연연해하지는 않았다. 언제든지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낌없이 주어 버리는 것이 그녀의 별이었다.
전철 안에서거나 버스 안에서거나 아이들이 칭얼대면 그녀는 주머니 속에서 한 움큼씩 별을 꺼내서는 우는 아이들의 손바닥에 놓아 주곤 했다. 울던 아이들은 울음을 그치고 짜증스런 표정을 하고 있던 어머니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돌았다.
언젠가 새로 부임한 처녀 선생님이 그녀의 별을 보고 너무 좋아하자 그 날 접은 별을 모두 주어 버리기도 했다. 애써 접은 것인데 아깝지 않으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그저 웃을 뿐 달리 말이 없었다.
어느 해인가 그녀가 1학년 담임을 맡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60명이 넘는 아이들의 생일을 모두 기억해 두었다가 그 날이 되면 손수 만든 셀로판지 주머니에 오색이 영롱한 별을 가득히 넣어서는 축하 카드와 함께 선물로 주는 것이었다. 방학 동안에 생일이든 아이들은 행여 못 받을까봐 조바심이었지만 개학날이면 그 아이들에게도 어김없이 별이 든 봉지가 안겨졌다.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 자라난 이 학교 아이들에게 이 종이별은 그냥 종이별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따뜻한 사랑이요, 아름다운 꿈이었다. 그리고 먼 훗날까지 잊혀지지 않고 오래오래 기억의 하늘에서 반짝일 진짜 별이었다. 별이 가득 든 주머니를 받아들고 교무실 문을 나서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별처럼 빛나던 것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녀와 마주 앉았던 한 해가 어느덧 지나갔다.
그 동안 나의 눈에 비친 그녀는 언제나 처음 인상 그대로였다. 평온하고, 따뜻하고 그리고 행복해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세파가 남기고 간 어두운 그림자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남편을 만나서 예쁜 아이들이랑 함께 살아가는 그런 여인에서만이 풍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주위는 늘 밝고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을 안 것은 그 다음해 봄, 신학기가 되어서 그녀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고 난 후였다. 그녀는 미망인이었다.
어려서는 일찍 부모를 여의었고 젊어서는 남편을 외국에 보내고 늘 떨어져 살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다리던 남편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냉동된 시신이었다. 사인(死因)도 유언도 없었다. 세 번을 죽으려고 했다. 그러나 세 번 다 실패했다. 울 수조차 없었다. 아이들 때문이었다.
언제부터 그녀는 별을 접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부터 울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 우는 법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그러나 그중 아름다운 것은 눈물속에서 피어나는 웃음이 아닌가 한다. 나는 그녀에게서 그것을 배웠다.
&...손광성(1935년 함경남도 홍원 출생),
수필가, 동양화가이며, 마흔살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요 경력으로는 제33대 국제 펜클럽 부이사장, 한국수필문학진흥회 고문, 서울시민대학 문예창작 강사, 한국수필문학진흥회 회장, 동남대학교 강사, 서울고등학교 교사 등이다. 서울대 국어교육과 동국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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