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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공스님의 글 중에서...

타인의 흔적/너와 나의 간이역엔...

by 이도화 (비닮은수채화) 2022. 6. 2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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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번에 오른쪽 눈이 수난 겪다 좋아졌는데, 어제 저녁부터는 왼쪽 눈이 아프기 시작했다. 마이 아프다.
덕분에 연신 외눈물을 흘린다. 나는 한쪽으로만 우는 재주를 가졌다.
그릐면서 좌우 눈에서 흘리는 눈물의 연유가 따로 있을까를 생각한다. 좌우 뇌의 쓰임 조금씩 다르듯 흐르는 눈물에도 감정이 격할 때는 오른쪽 눈에서 눈물이 나는데 나오는 눈물의 양이 많다거나,  혹은 후회나 회한이나 반성 같은 감정들이 넘칠 때는 왼눈에서 분비되는 눈물의 양이 많다거나 염분의 짠 정도가 더하다거나 덜하는 거 말이다.
슬픔이나 분노, 아니면 너무 느꺼워서 절로 흘러나오는 눈물남의 근본원인에도 과중과 경도의 차이가 있을까 말이다. 무겁고 가벼움의 차이 말이다.
눈물샘은 전생에 다 흘리지 못한 이생의 참회통로라는 말. 머리카락보다 더 가느다란 눈물샘이라는 통로는 단언컨데 전생 업의 끄나풀이라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을 잘 못 했을 때는 이쪽 눈의 눈물샘이 열리고 저것을 잘 못 했을 때는 저쪽 눈의 눈물샘이 열려 상호 공평하게 흘려주는 것 말이다.
보편적으로야 좌우 눈에서 흘리는 눈물의 양과 짠 정도가 슬픔의 깊이 만큼 많고 적고 무겁고 가벼음을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이처럼 특정한 일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흘리게 되는 눈물이라는 내용물의 각각의 화학적 성분들도 제각기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용접하다 그 강력한 불을 마주 본 탓으로 흘리는 눈물이나 아버지와 다투다 한쪽 눈을 맞아 그 눈 퉁퉁 부어 눈물 흘리되 맞은 눈에서 분비되는 눈물이 더 무겁다거나 분비되는 독소의 경중이 다른 거 말이다. 분명한 것은 안구 죄우의 성정이 같을 수는 없지 않을까.
달을 바라보는 슬픔의 각도에 따라, 당산나무를 바라보는 기원의 깊이에 따라,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온화하고 따뜻한 온도들은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어쨌든 눈물은 흘러나와야할 이유가 분명했을 때 기억을 소환하는 눈물샘의 미세한 근육들의 이완활동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이런 슬픔에는 이런 눈물을 흘리고 저런 슬픔에는 저런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좌우 눈이 똑 같이 흐르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눈물을 구성하는 화학성분이 사안에 따라 각기 구성을 달리할 것이라는 말이다. 슬플 때 분비되는 눈물은 더 시고 화를 이기지 못할 때는 분비되는 눈물은 더 쓰며 벅찬 사랑을 할 때 분비되는 눈물은 더 달다는 사실 말이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흘려야할 눈물은 아니었을까 이 말이다. 그것이 용접하다 불 맞아 흘 리는 것이 됐건 사랑을 잃고 우는 눈물이 됐건 부모를 잃거나 자식을 잃거나 혹은 너무나도 애통히 떠나보내는 마음이 됐건 일평생 살면서 눈물 흘리지 않고 죽을 때까지 산 사람 없고 슬퍼하지 않은 사람 없듯 행복에 겨워 웃고만 산 사람 없듯 천태만상의 현상에 흔들리는 것이다.
동쪽 바람에만 흔들리는 꽃이 있다거나 서쪽 바람에만 피어나는 꽃은 없는 것처럼 말이
다.
눈물의 원천은 전생의 기억을 퍼올리는 두레박 같은 가늠할 수 없는 깊이를 지녔다.
그러니 둔하건 예민하건 눈물샘이 죽어 그 샘을 구성하는 미세한 근육들과 신경세포와 눈물을 구성하는 화학 기호들이 죄다 죽어 화장장 굴뚝 아궁이로 흩어진다고 눈물은 결코 멈추거나 죽지 않는다는 말이다.
눈물만 그러할까. 눈빛도 그러하고 심장 두근거리는 압력도 그러하고 손톱에 뜬 반달의 면적과 입술 주름의 깊이와 머리털을 붙잡고 있는 모공의 견고함도 천편일률 고정된 것은 아니다.
시시 때때로 변하며 쓸쓸하고 기쁘고 지겹고 노곤한 것이다. 사람 얼굴은 하루에 열두 번씩 변한다지 않나. 중생계에 사는 공업 중생으로서의 업보다. 네 슬픔이 전이되어 내게로 왔고 그래서 내 가슴도 아프듯이 내 행복이 오직 나만의 행복 뿐이겠는가. 물 밖을 벗어난 물고기에게 코에 묻은 물을 적셔주는 한 마리 개처럼 너도 나도 다 한 세상을 사는 것이다.
놀이터 그네에 묶인 타이어에 발이 빠진 어린 코끼리가 울음소리 길게 소리치고 있는데  이 소리 들은 몸집 커다란 아빠 코끼리 달려와 어찌할줄 몰라하는 동안 용케 발을 뺀 어린 코끼리 뒤로 아들을 그렇게 만든 타이어를, 아빠 코끼리 당신의 커다란 코로 휘감아 냅다 던져버렸는데 어쩔거나, 타이어는 놀이터 그네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어린 코끼리를 위험하게 만든 그것을 몹시 화난 아빠 코끼리가 던져버렸어도 그 까만 폐타이어에게 무슨 이성이 있었겠느냐 이 말이다.
하필 거기에 있어서, 밭일하다 돌멩이를 밭둑으로 던졌는데 하필 거기에 대숲이 있어서 마침 돌멩이를 맞고 소리도 요란하게 딱! 소리 나는 그 순간 몰록 깨달았다는 어느 조사스님처럼.
혹시 알아? 그대가 내게 위안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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