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한 판/ 고영민
대낮, 골방에 처박혀 시를 쓰다가
문 밖 확성기 소리를 엿듣는다
계란... (짧은 침묵)
계란 한 판... (긴 침묵)
계란 한 판이, 삼처너언계란...(침묵)...계란 한 판
이게 전부인데,
여백의 미가 장난이 아니다
계란, 한 번 치고
침묵하는 동안 듣는 이에게
쫑긋, 귀를 세우게 한다
다시 계란 한 판, 또 침묵
아주 무뚝뚝하게 계란 한 판이 삼천 원
이라 말하자마자 동시에
계란, 하고 친다
듣고 있으니 내공이 만만치 않다
귀를 잡아당긴다
저 소리, 마르고 닳도록 외치다
인이 박여 생긴 생계의 운율
계란 한 판의 리듬
쓰던 시를 내려놓고
덜컥, 삼천 원을 들고 나선다
- 시집 「악어」 (2005,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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