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

2021. 2. 5. 21:46타인의 흔적/시가있는 언덕배기엔...

 

아름다운 나이 여자 스물다섯
교회 첨탑처럼 나이가 높은 유부남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더니 어머니는 질 질 질 내 머리를 끌고
겨울 혹한의 우물가로 나가셨습니다

말은 얼어붙은 채 두려운 침묵만이 흘러
마치 어둠이 부러질 듯 굳었습니다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하나하나 옷을 벗으시더니
150미터 지하 물을 두레박으로 빠르게 길어 올려
머리 위에서부터 부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젖꼭지가 고드름이 되어 얼어 빛났습니다
어머니의 머리가 도봉산처럼 삐쭉삐쭉 일어서
절벽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다음 얼어 터질 듯한 미끈거리는 오른손을 치켜들고
어머니 스스로의 몸에 채찍을 날리기 시작했지요
예리한 채찍은 금세 어머니의 어깨와 허벅지에
붉은 지렁이 기어가고
다시 온몸에 핏물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피까지 기절했을까 피까지 멍들어 푸르렀습니다
오직 나의 벌은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수천 번 짐승처럼 울며 뒹굴었지만
숨 넘어가는 어머니를 등 돌리며 포도송이 같은
아이를 안고 있는 그 남자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 이후로 내 생애 해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딸의 해가 떠오르기를
기도하다가 생을 마쳤습니다



신달자 지음
<고백> 詩 전문

 

어느 시인님의 카스에 갔다가 글을 읽고

맘가는데로 나름의 댓글을 달았었다.

내 댓글에 그 시인님이 아닌 모르는 분이 좋아요를 눌러서

무심코 그분의 카스에 들어갔다가

올려진 글을 읽고

찌르르 주파수가 끊어지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고 

하얗게 일시정지된 머릿속..

내도록 뇌리에 남아 글들이 아무렇게나 춤을추고 있다

아마도 먼저 간 언니도 나도 반대하는 결혼으로

평생을 엄니 가슴에 바윗덩어리 하나 올려 놓은 돌이킬수 없는 죄책감 때문인지도..

뒤죽박죽 옛 고향 우물가도 떠오르고

고드름이 녹아 떨어지던 낙숫물 소리를 하나 둘 세어 보던 어린날의 기억도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는 이러저러한 기억의 편린들...

그렇구나....

노래 하나에도

싯귀절 하나에도 이렇게 감동하고 아파할 수가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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