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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想

타인의 흔적/너와 나의 간이역엔...

by 이도화 (비닮은수채화) 2009. 9. 2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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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입니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각박할수록

게으르고 느슨하게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 건 어떨까요
앞만 보고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문득 하늘을 올려다볼 당신이
그 파아란 하늘에서 오래 잊고 지냈던 자신을 만나길 바랍니다
가을 밤 풀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며
진정한 자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당신이길 바랍니다
분주히 앞만 보고 살아왔던 어제의 나와 정신없이 살아갈 내일의 나에게
이 가을 사진엽서 몇 장 띄웁니다

  

 

구절초

높고 푸른
하늘 그리워

아홉마디 훌쩍 자라
화장하지 않은 민얼굴로

활짝 웃고 있는
개구쟁이들

 

 

어머니

대처 나간 막둥이가 밥은 제때 먹었는지

이른 새벽
경전선 첫 열차에 몸을 실은 어머니

곤하게 주무시는 당신의 모습에서
성스럽고 아름다운
이 땅의 천사를 만납니다

  


굴뚝 연기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밥 짓는 연기 하나 둘 피어오릅니다

빈 들판에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토담집 굴뚝에 피어오르는 흰 연기가
산골 마을의 저녁을 푸근하게 합니다

풋풋한 산골 냄새 지푸라기 타들어가는 냄새
오랜만에 만나는 낯익은 냄새가
가슴 속 깊이 숨어있는 그리움을 깨웁니다

  

 

주름

고구마 캐는 어머니 손에 주름이 가득합니다
언제 저리도 늙으셨는지

행여 다칠세라 맨손으로 황토를 걷어내고
조심스럽게 고구마를 다루시는 어머니
당신 자식들도 저리 소중하게
어루만지며 키우셨겠지요

여름내 일해서 좋은 양분은 모두
뿌리에 내려주고
자신은 누렇게 시들어가는
고구마 잎사귀를 생각했습니다
고구마를 먹을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습니다

  

 

기다림

이제나 오려나 저제나 오려나
자식들 기다리는 부모 마음처럼

동구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졸고 있는 똘똘이

길은 막혀 몸은 더디지만
마음은 먼저 고향으로 성큼 달려갑니다

   

 

꽈리

가을에 꽈리를 보면
이 땅의
어머니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낡고 주름진 껍질 속에
붉게 타오르는 뜨거운 사랑이여

  

 
메밀꽃

강원도 산골마을 들머리
보따리 이고 장에 갔다 오는 길에
하얀 물결이 아득하게 펼쳐집니다
식구들보다 먼저 나가 반기는 흰둥이도
보따리를 이고 오는 어머니도
하얀 메밀꽃 물결과 어우러져
꿈결 같은 풍경이 됩니다



문화일보 김선규기자의 秋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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