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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 만난 사이...

담숙한 눈짓/뜨락...

by 이도화 (비닮은수채화) 2021. 2. 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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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도

구정도 쓸쓸해져버린  시골 엄니 댁...

평범했던 일상들이 아득해지고, 그리움이 더 해지는 이즘이다.

 

엄니 거동이 불편해진 뒤부터

봉계 이모님이 늘 엄니 김장을 해드린다.

아등바등거리며 살아내는 내가 안쓰러운지 곁다리로 우리 집 김장까지 해주시는 터

이종사촌이  갖가지 밑반찬과 가마솥 곰국과 김장통을 들고 차곡차곡 쟁여 드리고 가니,

너무 고맙고 또 고맙다

이종사촌 재현이는 시한부 되어 살다가 천신만고끝에 다행히 뇌사자의 간 이식을 받고 제2의 인생을 찾은 터라

무건운 짐보따리 들고 오가는 게 미안하기 그지없고

외로운 엄니께 친구처럼 부모처럼 살뜰한 정 나눠주시는 천사표 울 이모님 덕분에

늘 감사하는 맘이다.

바람처럼 달려가 뵐 수없는 이즘이라

한사코 조심하며 또 조심하라고 시골 내려오는 것도 한 걱정을 하시길래

집에 오는 요양사에게 우선 먹을 량만 조금 택배로 보내줄 것을 부탁해보라고 했더니,

" 이런 무거운 건 못 들겠다.

김장김치 같은 건 택배가 안된다.

20킬로 넘으면 다시 들어서 와야 된다."

이렇게 말하면서 가버렸다고 한다.

베란다 창을 열면 아파트 마당이고 승용차가 있으니 뒤에 실으면

그 요양사 아파트 앞에 택배 삼실이 있다는데

거절당할 거란 생각을 못했던 나는,

김장 택배를 받고 나서야

버려진 스티로폼 상자를 구해서

김치냉장고 통을 꺼내지 못하고 한 포기씩 한포기씩 궁물 줄줄 흘리며일일이 옮겨 담아서

복도 끝까지 밀고 나가서 계단을 내려다 보고 한숨 돌리고 있는데

어느 고마운 분이 지나가다가 엄니 전동차에 실어 주시더란다.

아버지 살아계실 적 전동차는 탄탄하고 안정감이 있었지만 처분을 한터

쭈나랑 울 조카들이 조금씩 용돈을 모아서

가벼운 전동차를 새로 사드렸기 때문에 무거운 걸 실으며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데

택배 삼실까지 어떻게 가셨을까 싶은 게 울컥해지면서 화가 절로 났다.

일로 만난 사이지만

무려 7년을 엄니와 식구처럼 지냈고

타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 보담 매일 들여다 봐주고 말씀 들어드린다는 것에 미쁜 맘뿐이어서

큰 오라버니도 틈틈이 용돈을 찔러주고

나 역시도 고마움의 표시로 작은 정성을 보였었는데

어쩜 이리도 야멸차게 털어버릴 수 있을까

담날도 그 담날도 김장은 어찌했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해서

너른 맘 울 엄니도 무던히 속이 너무 상하셨던지 그만오라고 하셨단다.

더군다나 내가 사드린 청소기도 고장 내놓고 테프를 얼기설기 붙여 놓고서도 말 한마디 없더라는 것이 너무 괘씸하고

며칠 동안 속앓이로 잠을 설치기도 했었다.

구정 지나고 나면 요양사를 다시 들이던지 며칠 혼자 계시겠다는 엄니 말씀에

외출도 맘 놓고 할 수 없는 시절에

또다시 방에 홀로 갇혀버렸으니

이 모든 게 못난 나로 인한 것이란 생각에 답답한 맘 그지없었다.

 

면구스러운 맘에 한동안 연락도 못 드리다가

그제 연락드렸더니

70세 정도 요양사분이 새로 오셨다며

엄니 음색에 생기가 돋아났다.

집에 오면 상의를 벗어 ( 어르신 옷에 겹치면 안 된다고 꼭 따로 걸어두고

살갑기 그지없단다.

점점 거동이 불편해지신 엄니께서 생애 첨으로 생수를 사다 드시는데

그걸 보면서 직접 집에서 몸에 좋은 약초를 넣고 끓여다 드릴 테니 생수 그만 사라고 하고,

시레기 나물도 꼭 데쳐서 드시기 좋게 줄기 껍질을 일일이 벗겨서  드리고

집안 텃밭에 심은 소채들도 일일이 다듬어 먹기 좋게 해서 가져다주신다니

그 정성에 괜스레 목젖이 아려온다.

공연히 화근이 되었던 이 못난 딸은

이제사  두 다리 쭉 뻗고 맘 편하게 꿀잠 잘 수 있게 되었다.

새로 오신 말동무와 서로 외로움 나누며 오래도록 울 엄니 의지가 되어주시길 바래본다.

 

오늘은 입춘 이브날이다.

바람 끝에 말랑거리는 봄물의 선율이 느껴진다.

봉긋해진 꽃망울들이 한껏 숨차듯 차올라

형형색색 꽃물 들이는 봄봄이 열리는 날...

가슴 가득 그리움처럼 다가서는

봄날은 또 이렇게 우리들 곁으로 찾아든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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