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시대에도 해는 뜬다. 2022년(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해돋이 명소가 폐쇄되었다. 하지만 4인 이하 소모임, 가족 단위로 일출을 보려는 발길이 이어졌다.
별도봉 정상에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해를 기다렸다. 새해맞이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에서 희망을 떠올렸다.
간절하다는 것, 염원한다는 것, 저마다 간직한 소원이 다를지라도 한 곳을 응시하는 기운이 힘을 만들어 낼 것 같았다. 코로나19도 물러갈 것 같았다.
제주의 아침은 영하 3도의 날씨였지만, 바람 한 점 없는 쾌청한 하늘이었다.
해가 떠오르자 인파 속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보기 드문 해돋이라고 입을 모았다. 너도 나도 우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뿔뿔이 흩어지는 인파 속에서 처음 보는 분이 70년 만에 처음 해돋이 동영상을 찍었다며 전송해주겠다고 했다. 편을 가르지 않고 ‘우리’가 되면 마음의 벽도 허물어진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전화번호를 불러주고 해돋이 동영상을 전송 받았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별도봉에서 화북 방향으로 내려가자 갈래길이 나왔다. 왼쪽과 오른쪽은 별도봉 둘레길 방향이고, 앞쪽으로 내려가면 4·3 유적지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으로 갈 수 있었다.
쌀쌀한 날씨와 습기 때문에 바닥에 깔아놓은 야자매트가 미끄러웠다. 조심조심 내려서다 보니 또 갈래길이 나왔다. 왼쪽에는 해안절경을 볼 수 있고 곤을동 마을 사람들이 물을 길어다 먹었다는 식수터가 있는 곳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이 나온다. 우선 식수터가 있던 왼쪽을 선택했다.
사람에게 선택은 숙명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 책임지고 최선을 다할 때 보람과 행복이 수반된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없이 잔인하게 탄압되었던 인권 앞에서는 저린 가슴을 안고 겸허해진다.
식수터였던 ‘안드렁물’ 푯말이 나왔다.
‘이곳 ‘안드렁물’은 곤을동 (제주 4·3 잃어버린 마을)의 안곤을 주민들이 이용했던 식수터로 주민들은 3단으로 나눠진 이 물을 먹는 물과 허드렛물, 빨래물로 이용하였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에는 식수로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깎아지를 듯한 웅장한 현무암 바위틈에서 흐른 물이 3단으로 나눠진 식수터 중 1단 바닥에만 고여 있었다. 곤을동 마을 사람들에게 식수를 제공했던 샘이라는 것이 무색하게 고인 물은 탁하고 양도 적었다. 아기가 젖을 빨지 않으면 말라버리는 엄마의 젖처럼, 악몽 같은 기억을 잊으려는 것처럼, 물도 말라가고 있었다.
다시 걸어 나와서 곤을동 마을로 향했다. 찬란한 해를 맞이하는 곤을동 마을은 아늑했다. 햇살을 품은 집터마다 돌담이 경계를 알려주고 있었다. 올레로 보이는 터에서는 ‘호박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며 친구를 불러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저 봤을 뿐, 들었을 뿐, 맡았을 뿐, 돌담은 꼿꼿하게 74년 동안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바람이 불어도 태풍이 몰아쳐도 허물어질 수 없는 숙명 같은 멍에를 안고 서 있었을 것이다.
마을이 있었다는 조감도를 보고, 옆에 있는 ‘4·3 해원 상생 거욱대’ 앞에서 묵념을 올렸다.
곤을동 마을을 끼고 도는 바닷가와 연결된 짧은 길을 걸었다. 마을이 있을 당시만 해도 올레였을 이 좁은 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바닷가 해풍 속에서도 마른 억새풀이 계절을 말해주고 있었다. 짠물에 닿거나 해풍을 맞으면 자라기 어렵다는 억새풀이지만,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억지스런 마음을 가져봤다.
억새풀 사진을 찍다가 바닷가에 버려진 비닐종이와 플라스틱 물병이 눈에 들어왔다. 데크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버린 담배꽁초와 깨진 술병도 보였다. 4·3 유적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쉬어가라고 만들어놓은 쉼터 바닥에도 담배꽁초가 널려있었다.
돌아 나오는 길,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주변에는 꽃씨를 파종해 놓은 곳이라고 조심해 달라는 푯말이 있었다.
마침 화북동 마을 주민이라는 남자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믿을 수가 없다고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그 분에게 속 시원하게 설명하기 힘든 내 자신에게 물었다. 4·3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새해 아침 나의 다짐이 하나 더 늘었다.
하천으로 내려가 바다를 보았다. 건천이긴 하지만, 하천에서 스며드는 민물과 짠물이 섞이는 포구에서 물오리 떼가 놀고 있었다.
코로나19가 지구촌에 대유행을 하고 있더라도 지구는 돌고 태양이 뜬다. 구름에 가려도 태양은 태양이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가슴에 붉은 태양 하나 씩 간직하길 바랐다. 용맹과 해학의 상징 2022년(임인년) 검은 호랑이해를 맞아 소원성취하기를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