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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 생각 ‥

담숙한 눈짓/남루한 수필 흔적...

by 비닮은수채화 2021. 8. 2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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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의 소나기 속..

소년이 앙큼 발칙했던 소녀에게 안겨주었던 마타리꽃!

흙탕물 내려가는 도랑가에

노랑 코스모스랑 노랑나비...

다시 만난 유홍초야! 안녕~`

오늘은 더 새첩따..

 

 

 

더디게만 가는 비둘기호에서 내린 채화는 

바툰 걸음으로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낮은 코에 항상 누런 등겨 가루가 묻은 정미소 아저씨가 휘돌아진 담벼락 아래 

담배를 피워 물고 서 있었다.

몇 걸음만 더 가면 그니의 집이다.

낡은 양철 대문이 군데군데 녹이 쓴 채 열린 마당에 들어서니,

툇마루에서 해바라기 하던 그니가 활짝 웃는다.

그니 곁엔 언제나 막둥이 동생 경은이가 딱풀처럼 붙어있다..

우린 늘 그렇듯 건넌방에 들어가 

방바닥에 엎드린 채 라디오를 들었다.

가만가만 들려 주 듯 

그니가 가르쳐준 노래는  `끝이 없는 길`

박인희의 노래였다.

작은 공책에 노랫말을 적어 놓고 나긋나긋 불러주는 그 노래를 들으면 안온한 느낌에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자음과 모음이 수줍음을 타듯 조가비 같은 그니의 글씨 위로

악필로 흘려 쓰는 자신의 글씨가 떠올라 얼굴이 붉어진다.

 

자그만 방안엔 서쪽으로 난 들창이 있었고

목단꽃과 나비가 그려진 햇덜뽀가 걸려 있었다.

신기한 듯 가만가만 들여다보면

곱게 한 땀 한 땀 수놓아진 풍경이 꿈을 꾸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들게 한다.

경은이는 꼭 인형 같다.

시꺼먼 남동생이 하나뿐인 채화에겐 더없이 유정한 경은이다.

또렷한 쌍꺼풀에 까만 눈동자가 어쩜 그리 맑을까...

자꾸만 바라보노라면

경은이는 발그레 볼을 붉히며 햇덜뽀 뒤로 숨곤 한다.

펄럭이는 햇떨뽀안으로 나란히 걸린 옷들...

특유의 그 향기에 코가 벌룸 벌룸...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눈물이 나면

우린 약속이라도 한 듯 햇덜뽀 안으로 스며들어 가만히 가만히 눈물을 훔쳤다.

딸만 일곱인 그니의 자매들 중 맏이인 언니는 부산으로 유학을 가고

여고를 진학 못한 그니의 외로움이 

내 슬픔이 되어 하굣길엔 무언의 약속으로 그렇게 늘 만나러 가곤 했었다.

오늘은 밥을 먹고 가라면서 

큰방으로 데려간 그니가 차려온 밥상은 둥그런 스뎅 밥상 위에 된장찌개 냄비와 김치 한 보시기

커다란 양푼에 담긴 밥과 시래기 지진 둥근 프라이팬이 전부였다.

올망졸망 까만 눈에 동생들과 함께 달려들어 먹는 밥이 

그렇게나 더 맛나고 즐거웠다.

아버지 홀로 근엄하게 작은 상에 드시고

나름 둘레 반상에 정갈하게 담겨 있던 반찬 그릇들과 저마다 밥그릇이 따로이던 채화는

그니의 밥상에서 봄날 같은 향기를 느꼈다.

제법 논마지기와 밭을 부치던 그니 부모님은

공주들이라 절대 논일 밭일을 시키면 안 된다는 분들이 시라...

학교만 파하면 논으로 밭으로 몰리던 채화에겐 그 또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서쪽 하늘에 노을이 걸리면 

되돌아가야 하는 발걸음이 더없이 굼뜨다

 

세월의 휘모리장단 속으로 스며든

그니와 채화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고향 옛집 담벼락 너머 

까만 눈을 가진 아들 하나를 키우며 살고 있던 그니와 재회를 했다.

이제 또 

세월은 흘러 소식이 끊어진 그니가

언젠가 가르쳐 준 양수경의 `잊을래`..

오늘은

이 노래가 자꾸만 입가에 맴돈다..

 

참말 이제 나를 잊은 거...?

 

 

 

                                                               <햇덜뽀 사진은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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