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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한 이야기

담숙한 눈짓/남루한 수필 흔적...

by 비닮은수채화 2021. 9. 1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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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도 어매가 오셨으면 좋겠다 / 김재호  
 
 
 
잠이, 오는 길이
사각사각 눈을 밟고 오는
바람처럼 그랬으면 좋겠다
어떤 날은
우당탕탕 함석지붕 두드리는
별들의 장난질에 날밤을 샌다
잠자리는 그날그날
날씨와 같아서 종잡을 수가 없다
지난밤엔 어매가 뭐라고 하시는데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생전에 통역사이던 나에게도
못하실 말씀이 있었던가
한대 얻어맞은 듯
머릿속이 텅 비었다
그곳까지 걸어서 몇 리일까
떠나실 때 신겨드린 꽃신은 벌써 닳았을 텐데

진즉 새 신 장만할걸
머리 괴면 금세 떠날 수 있으려나 
 

 

 이즘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시인님의 카스에 갔다가 

시 구절에 나오는 꽃신에 꽂혀서

먼저 간 언니의 시동생 이야기가 생각나 몇 글자 적어본다.

' 목화꽃 연정 ' 이란 제목에 언급했던 글처럼 언니야는 뒷동네 칠 남매 종갓집 맏이에게로 시집을 갔다.

가난한 집안의 맏며느리란 자리가 그리 호락호락하질 않았기에

형부의 가난한 월급봉투만을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행여 아이들을 잃어버릴까 봐 요강을 방에 들여다 놓고 밖으로는 방문을 잠근 채, 

우유 요구르트 배달부터, 슈퍼마켓, 치킨 가게...

안 해 본 장사가 없다시피 고생 고생해서, 시댁에 논과 밭 그리고 그 시절 재산목록 으뜸인 소도 사드리고

언니네도 이층 양옥에 가게 딸린 집을 사는, 울트라 슈퍼 파워 우먼이 되어 전쟁 같은 삶을 살아냈었다.

슈퍼마켓 하던 어느 날,

가게 손님이 뜸한 즈음에 졸음이 몰려와 곤히 잠이 들었다지.

 

"형수요! 형수요! "

부르는 소리에 내다보니, 형부 바로 아래 남동생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신발을 사달라고 하더란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언니의 시선 끝에

웬일인지 그는 맨발로 어정쩡하게 서 있더라는 거다.

시댁과의 거리는 걸어서 이십여분 정도...

언니야는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신발을 사줬고

몇 번이고 고맙다고 고맙다고 하면서 시댁으로 향해 가더라지.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나 보니 꿈이었다.

이상한 꿈이라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았는데,

아!... 그 시동생이 죽었다는 연락이 왔더라는 거다.

 

아주 내성적인 그 시동생이 어릴 적에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왕따를 당했는지

친구들에게 몰매를 맞고 들어와서 며칠을 앓아누웠다는데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성질머리 더러워서 저런다고 내버려 뒀다가

그 길로 간질병이 걸렸다고 한다.

형제 중에 인물이 젤 좋았고 착한 시동생이 었는데 결국은 부모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짧은 생을 마감해 버린 것이다.

죽이라도 끓여 먹이고 병원에라도 데려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외로이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살다가 먼길 떠나는 길에,

부모형제 다 제쳐두고 울 언니야를 찾아와 신발을 얻어 신고 행복한 얼굴로 떠났다고 하니,

시인님의 꽃신과 오버랩된 그 시동생이 아픔 없고 슬픔 없는 곳에서 

편히 쉬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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