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용궁사

 

 부산은 제2의 고향이다. 스물하나. 꽃다운 나이에 부모 형제를 떠나 부산에 입성.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 13살이 되던 해에 떠나왔으니, 내 푸른 날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잊지 못한 도시이다.

 가난한 농가에 태어나 그토록 하고 싶던 미술 공부를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당찬 야심은, 때때산골 강원도 남자와 정분이 나는 바람에 산산이 흩어져가고 외줄 타기 하듯 어렵고 힘든 날들을 채워간 곳이라 애증도 깊고 유정하기도 하다.

 

 아이는 어느새 청년이 되고 어느 날 결혼하고 싶다며 데리고 온 아가씨가 부산 아가씨였다. 그즈음 문현동과 대연동 사이에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사돈댁이 시댁 동네인 용호동으로 이사를 해서, 나와 부산과의 인연. 그리고 우리 아이의 배필인 며느리와의 인연은 필연인가 싶기도 하다. 만나게 될 사람은 만나게 된다는 시절 인연이리라.

 한동안 연애 중이던 아이는 양가의 허락을 받고 어설픈 살림을 꾸렸고,
결혼식을 올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가운데 코로나 사태가 덮쳐왔다. 부모로서 애타는 심정을 어이 다 표현하랴. 미루고 미루다 4월에 날짜를 잡고 상견례를 하기로 했다.

 삼월 하순. 바람은 차고 햇살은 따사로운 날. 연습 없는 상견례 날이 주는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이미 살림을 꾸려 살던 아이들은 평화로운데 가슴을 볶으며 맘 졸이는 건 혼자만의 몫이었다.
사돈의 단골이라는 식당에서 마주하고 어색한 분위기속에 인사를 나누었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흐릿한 기억이다.  

짧은 듯 아주 긴 식사를 마치고 밀린 숙제를 마친 아이처럼 홀가분해져서 차에 몸을 실었다.

 지쳐있던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던 아이가 늘 가고 싶어 하던 해동 용궁사에 가자고 제안했다. 부산을 떠나 대구로 이사할 때 어찌 살꼬. 눈물 그렁대며 못내 뒤돌아보며 또 돌아보던 내 맘의 안식처 부산. 바다를 유난히 좋아하고 절 마당에 들어서면 맘이 이리도 평화로운 나인데, 얼마나 반가운 제안인가.

 

 화들짝 웃음꽃을 피운 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해우소에 가서 무겁던 맘을 싹 비운 뒤 좁고 정겨운 골목길을 지나

처음 가보는 해동 용궁사에 들어섰다.
해가 제일 먼저 뜨는 곳.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을 마음을 다해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이룬다고 한다.
인생의 시작점에 선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게 되길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1376년, 고려 공민왕 때 나 옹 대사가 창건하였다는데 어느덧 60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쉽게도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에 중창되었다고 한다.

 먼저 다른 사찰과는 다른. 유일하게 석상으로 된 십이지상들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서로 자기 동물 띠를 찾아 어루만지며 또 서로 놀려 먹기도 하며 108개 장수 계단을 내려갔다. 사뭇 용궁으로 들어가는 느낌과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하에 있는 신비한 약수터에는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민물이 흐르고 있어 너무 신기했다. 물 한 모금 시원하게 마시고 싶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아쉽게도 그 맘은 접어야했다. 

 쪽빛 바닷물결이 출렁이는 아름다운 풍경과 고고한 사찰이 어우러져 또 다른 설렘으로 다가섰다. 어디에 눈을 두어도 한 폭의 그림 같은 멋진 풍광. 나른하던 세포들이 올올이 살아나는 느낌이 들어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사뿐 사뿐 걷던 며느리가 팔랑거리며 뛰어가 포대 화상의 코와 배를 어루만지며 얼굴을 붉혔다.득남 불이다. 그 모습이 너무 예쁘다. 아들 하나뿐인 내겐 발랄한 그 아이가 딸처럼 사랑스럽다.유명한 사찰들을 사돈댁과 늘 다녀서인지 날렵한 가이드가 되어 주어 안내해 주는 대로 맘 편히 다니는 것도 행복이었다. 무엇보다 가슴 설레는 곳이 해돋이 바위가 아닐까?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이곳. 일출을 보았으며 참 좋았을걸.그 부족함을 탁 트인 너른 바다가 맘껏 해소해 주었다. 묵은 숨을 내려 두고 비릿한 바닷냄새를 폐부 깊숙이 받아들였다.

 1974년 정암스님이 주지가 되어 관음 도량으로 발원하고, 백일기도 중 하얀 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것을 꿈을 꾸었다하여  해동 용궁사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 신출귀몰한 용의 출몰이 참으로 많은 우리나라이다. 바다와 용. 관음 대불이 조화를 이룬 사찰로 누구나 진심으로 기도하면 꼭 현몽을 받고 한 가지 소원을 이룬다 하여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뭇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지인 중에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분이 강원도에 계시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을 잡고 절에 열심히 다녔다고 했다.
세월이 흐르고 사십 언저리에 간암으로 고생하다가 구사일생. 간 이식 수술을 받고 혼곤한 잠에서 깨어나다가, 병실 너른 창문으로 금빛 햇살이 가득 쏟아져 들어와 그분의 가슴에 안기었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그 환희를 평생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많은 일이 비일비재하다.

 친정 막둥이 남동생이 간암으로 온몸에 전이가 되어 사경을 헤맬 때 곤드레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강원도에 계신 그분께 부탁드렸더니,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어렵사리 구해서 한 박스를 보내주셨다.

이 삼일 뒤 전화를 주시면서 그 곤드레를 건네 준 분을 만났는데,

삶아서 말릴 때 바람이 많이 불어서 잘 씻어야 할 거라고 했다면서,
살뜰하게 챙겨주셔서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다시 한번 더 뒤돌아 사찰을 돌아보며 나오다가 다리에서 내려다본 나한상.

동자가 들고 있는 그릇으로 동전을 던져 들어가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하여,

수많은 동전이 흩어져나와 있었다.
서로 동전을 찾아 던졌지만, 그릇 밖으로 튕겨 나가 버리고,
울 아이의 동전만 그릇으로 쏙 들어갔다. 우린 얼싸안고 뛰면서 환호성을 질렀고, 

주위 사람들도 함빡 미소지으며 같이 즐거워해 주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 해동 용궁사.

 동해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해수 관음보살상을 가슴에 묻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우리 아이들도 나도 잊지 못할 삼월의 끝을 장식하며 새로운 꿈을 향해 오늘도 살아내고 있다.

 

* 대학/일반부 산문 차상에 입상한 이도화의 <해동용궁사>는 한 어머니가 아들의 혼인을 앞에 둔 심정과

아들.예비 며느리와 함께 해동용궁사를 찾아 참배하고 둘러본 심정을 일상과 불심과 연결해 성찰하고 있는 글이다. 문장의 표현이 섬세하면서도 진솔해 읽는 이에게 공감을 주는 글이다. 입상을 축하한다.

2021. 11.8

심사위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