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전기웅
지난 폭우에 떨어진 사과를
바닥 한군데 둥그렇게 모아놓고
끌고 온 리어카에 하나둘 태운다
구석진 자리이기는 해도나름 북적대는 시장 가판대 위로 데려간다
둥근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둔 저들끼리 가슴과 가슴을 서로 껴안는 사과
모자란 햇살에 풋내나는 사과는 햇살을 조금 더 쬐어준다
장날 구경 꼭 가고 싶어 하셨는데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눕혀둔 방 어머니를 이제야 모시고 나오다니!
불러 모은 사람들 눈빛에, 죄스레 골고루. 천천히. 속속들이 닦아 말리고 있다, 뒤늦은 후회로
◇전기웅= 2016년 계간 ‘서정문학’으로 등단. 형상시학회 회원. 시집 ‘촛불 바위’가 있음.
<해설> 삶의 막다른 길에서 죽음을 선택하려고 강가를 서성거리다가 누군가 벤치에 놓고 간 시집 하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 시집은 신경림 시인의 시집 ‘갈대’였다. 그 시집을 읽다가 나도 살아서 시를 써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후 막노동하면서 번 돈으로 헌책방을 뒤져서 시집을 사서 필사하다가 길을 제대로 알려줄 스승이 필요한 걸 알고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런 과정을 겪은 시인의 시가 어찌 따듯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시 ‘사과’도 그런 따스함의 산물이다. 며칠 전 스승의 날에 나를 찾아온 그에게서 놀라운 고백을 하나 더 듣게 되었는데, 처음 내게 시를 공부할 때 차비가 없어, 4시간을 걸어서 수업을 받으러 다녔다 한다. -박윤배(시인)-
출처 : 대구신문(https://www.idaegu.co.kr)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시집 <농무>(1975,창비)
피에쑤....머무는 카페에 올라 온 시를 읽다가
전기웅 시인의 일화에 그만 멍해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신경림의 '갈대'란 시가 사람 목숨 하나 살려놓은 건 아닌가!
그리고, 벤치에다 시집을 두고 간 이는 누구일까
뇌리에 밑줄 쳐지는 시 한 작품의 의미가 얼마나 깊은지 새삼 놀라고 있습니다.
아, 언제쯤 그런 시 한 작품을 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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