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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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달팽이를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선다. 험한 세상 어찌 살까 싶어서이다. 개미의 억센 턱도 없고 벌의 무서운 독침도 없다. 그렇다고 메뚜기나 방아개비처럼 힘센 다리를 가진 것도 아니다. 집이라도 한 칸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시늉만 해도 바스라질 것 같은 투명한 껍데기, 속까지 비치는 실핏줄이 소녀의 목처럼 애처롭다. 달팽이는 뼈도 없다. 뼈도 없으니 힘이 없고 힘이 없으니 아무에게도 위험이 되지 못한다. 하물며 무슨 고집이 있으며 무슨 주장 같은 것이 있으랴. 그대로 '무골호인'이다. 여리디여린 살 대신에 굳게 쥔 주먹을 기대해 보지만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그렇다고 감정마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민감하기로는 미모사보다 더하다. 사소한 자극에는 ..
2022.03.30 -
별을 접는 여인
몇 해 전 일이다. 나는 어느 조그만 변두리 중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그때 내 자리는 어떤 여선생님의 건너편이었는데, 우리 사이에는 낡은 철제 책상이 두 개, 그리고 그 경계선쯤 되는 곳에 크리스털 꽃병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흰 편이었고 치열은 아주 가지런했다. 소리 없이 웃는 모습이 소녀처럼 해사했다. 그 크리스털 꽃병 같았다. 나는 가끔 꽃병 너머로 그녀쪽을 건너다보았다. 그 때마다 움직이고 있는 그녀의 희고 가냘픈 손이 나의 시선으로 들어오곤 했다. 색종이로 별을 접고 있었다. 공책 한 칸 넓이만큼씩 잘라 놓은 색종이를 오각형이 되게 요리조리 접었다. 접기가 끝나면 손톱끝으로 다섯 개의 귀를 살리면서 허리 부분을 살작 눌러 주면 금세 살아 통통한 예쁜 별이 태어나는 것이었다. 어..
2022.03.30 -
차향처럼
내 프로필에는 세 번 우려낸 차향처럼 담백하게 살고 싶다는 염원을 써 놓았다. 굽이굽이 인생길을 달려오면서 잘되지 않았음에 생긴 염원 아니겠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는 참 어렵다.
2022.03.26 -
7호의 <어른> 싱어게인2 10회/JTBC.22.02.14방송 202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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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 너머 꽃이 되다니...
내가 올렸던 포스팅중에 '겨울에 만난, 가을 운동회' 에 이성교 시인님을 언급한 적이 있다. 이성교시인님의 조카인 '해무 이선정'씨도 시인으로 활동중이다. 2019년과 2022년의 산불의 의한 기록이 맘이 아프다. 여전히 산불은 진화되지 못한 채로이다. 살던 집이 홀랑 타버리고 하루아침에 옷가지 하나 숟가락 몽뎅이 하나 안 남은기라 털썩 주저앉았던 어느 날 타고 댕기던 차 뒤 트렁크 낚시 가방에서 오래전부터 모아놓고 잊아뿟던 옛날 돈뭉치가 나온기야 씨알 돈 알제 행운의 돈 말이다 얼매 안되는 돈이라도 볼 때마다 힘이 솟는 거 있제 그때부터 한 장씩 이래 주변에 나눠주고 있다 안카노 받아라 니한테도 곧 행운이 올끼다 &... 몇 년 전 친구가 전해준 행운의 돈을 생각하며 본인도 이번 산불로 피난을 갔다 왔..
2022.03.10 -
바람아!
바람아! 제발 좀 멈추어다오. 온 거리에 미련 많던 가랑잎들이 정신없이 바람에 실려 몰려 다닌다. 내키지 않아 한없이 뭉기적 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사전 투표에 나선 길. 장소는 가파른 산중턱에 위치한 행정복지센터. 누굴 위해 이 산만디에 지었을꼬. 오를때마다 혈압오른다. 긴 행렬보니 새롭다. 새 정부에 바라는 간절한 소망들이 비록 마스크로 가려지기 했지만 눈빛들은 더없이 또롱하다. 찍을만한 놈은 없지만 그나마 그중에서 더 간사하고 야비한 놈이 되는걸 방지하기 위해서 귀한 내 한표를 행사한다. 돌아오는 길. 빌라와 아파트 사이에 모올래 화들짝 피어난 홍매 한 그루에 주름진 이내 맘을 가만히 펴 본다.
2022.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