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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엔딩
정수리에 앉은 봄이 오수에 젖은 시간 빨간 우체통 그 너머 분홍빛 웃음이 소란하다 바람의 애무로 하롱하롱 지는 꽃잎들 참을 수 없는 그 가벼움도 음률이더라. 차양 넓은 햇살 아래 결 고은 낙하 무언이 유언임에 세상이 가히 아름다워라
2022.05.04 -
호숫가에서
길가에 수레 국화도 만나고, 천생산 자락 아래 푸른 물결이 살갑다. 미루나무를 만나면 그저 좋다. 왼편 산봉오리는 천생산 정상이다. 찻집인가 기웃거려보니, 쉼터이다. 커피 가져 간다는 게 깜빡. 화들짝 피던 꽃 잔치 1부도 끝나고 연두에서 초록으로 출렁이는 계절이다. 목 뒷덜미 따끈해져 산을 포기하고 집 근처 호수를 찾아 들었다. 쉼터와 벤치. 몇 권의 책도 갖춰져 있고 쉼터가 될 수 있게 애쓴 흔적들이 보였다. 산 아래에서 쑥도 한 줌 뜯어왔다. 쑥 전 한 소당 부쳐 볼 요량이다.
2022.04.20 -
아네모네는 피는데
오호라 너로구나 숨막히는 뒤태로고 떠난 님 그리운가 하염없이 앉아있네 이별은 할은단애라는 형별같은 나날들..
2022.04.16 -
봄 나들이
ᆢ 보이지 않는 암담한 바이러스 커튼 젖히고 포항 찍고 경주 돌아 팔공산 자락 살포시 밟고 돌아왔습니다. 소중한 인연 분이 언니를 진심 넘 오랫만에 만났습니다. 봄, 봄 춘정에 못이겨 봄바람에 온 맘 맡겨 보았습니다. 비릿한 바다 내음 포항 영일대 경주 벚꽃 팔공산 자락 참으로 우리 나라는 아름답기 그지없어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수채화 한 폭이었습니다. &...식당 보담 바다 바라보며 먹고 싶다고 했더니, 죽도 시장에서 회 뜨고 멍게는 그 자리에서 뚝딱 먹어 치웠습니다. 영일대 솔숲 아래 돗자리 깔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맛나게 맛나게 먹었습니다. 분이 언니가 쏘주는 가방에 숨겨 놓고 따루어 주었습니다. 여자들이 낮술하는 거 보면 안된다나요. 오랫만에 만난 분이 언니 넘 방가웠구요. 운전해준 한 살 ..
2022.04.08 -
가슴 속에 핀 반지꽃 (심재순)
베란다 창가 화분에 빨갛게 핀 갈랑코에, 그 모양이 하도 예뻐서 다가가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친구 경미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린다. 나에게 귀걸이를 주고 싶다며 만나잖다. 내 손가락 사이즈를 몰라서 반지 대신에 샀다는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던 고모가 휴가차 집에 오셨다. 고모는 앵두빛 알이 박힌 예쁜 반지를 선물로 주셨다. 기쁜 마음에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행여 잃어버릴까 봐 겁이 났다. 하루 종일 내 손가락에서 뛰놀던 반지는 해 저문 밤에도 함께잤다. 손 씻을 때마다 만지작거리며 배시시 웃었다. 난생처음 끼어본 반지, 공부시간에도 방해하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간간이 반지를 본 친구들이 예쁘다고 말해준 것 말고는 아무 탈 없이 지..
2022.04.05 -
거룩한 본능
거룩한 본능 / 김규련 동해안 백암 온천에서 눈이 쌓인 주령을 넘어 내륙으로 들어서면, 산수가 빼어난 고원 지대가 펼쳐진다. 여기가 겨우내 눈이 내리는, 하늘 아래 첫 고을인 수비면으로, 대구에서 오자면 차편으로 근 다섯 시간을 달려야 하는 곳이다. 마을이라고 하지만, 여기저기 산비탈에 농가가 몇 채씩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난한 자연 촌락이다. 이 근방에는 천혜의 절경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이 고장 사람들 자신이, 그 절경을 이루는 웅장한 산이며 기암절벽이며 눈 덮인 수림이며 산새며 바람 소리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자연의 한 부분이 되어 있다. 이들의 주된 생업은 채소 농사와 담배 농사지만, 철 따라 산나물과 약초를 캐고 송이버섯을 따들이기도 한다. 어쩌면, 바보가 아니면 달관한 사람만이 살 ..
2022.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