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흔적/시가있는 언덕배기엔...(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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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에 그린 낮은 음자리
호반에 그린 낮은 음자리 / 이한명 멀리 상수리나무 스쳐 온 바람이 바스락 소리치는 계절이 오면 작은 벤치 하나로도 호반은 가장 큰 무대가 된다 다녀가는 바람마다 2중주가 되고 3중주가 되는 가을 합주곡 눈부신 가을볕이 수면에 음표로 반짝이면 바람은 상수리나무 마른 잎사귀를 타고 내려와 현을 켠다 가끔은 붉게 몸부림치던 쓸쓸한 눈빛의 꽃잎이 지고 말더라도 그리움 한 줄 써 내려간 호반에 달빛 하나면 족하겠네 고요히 평정심을 가다듬던 구름들 지우고 밀려 난 그리움의 파문은 끝내 삼키고야 만 울음 조각 달빛 하나로 현을 켜던 가을3악장 가슴속 들끓던 열기 몽롱이 흩어진 호숫가 쓸쓸히 숨어 우는 바람이 있다
2021.10.15 -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보일때가 있다.... 법정
하늘매발톱... 모란? 작약? 매발톱. 팥배나무.... 열매가 이쁘다던데 기다려봄! 홀로 인 듯... 산보 산행 산보... 되돌아오는 길에 대원사에 들렀다. 낭랑한 불경 소리가 담을 넘고 요래 요래 빗질 문양 새겨진 마당을 조용조용 지나왔다. 일요 장날... 취나물 한봉 다리, 계란 반 꾸러미, 양파 한봉 다리, 토마토 한봉 다리 오이 세 개, 도토리묵 한 모, 오늘도 딱 이 만 원어치! 인자 올해 마지막 쑥 전 구워 아점으로... 또 하루가 가누나.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앉은 애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먼저 따서 보내주고 싶은 생각이 들고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 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
2021.04.18 -
어떤 사랑....
아름다운 나이 여자 스물다섯 교회 첨탑처럼 나이가 높은 유부남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더니 어머니는 질 질 질 내 머리를 끌고 겨울 혹한의 우물가로 나가셨습니다 말은 얼어붙은 채 두려운 침묵만이 흘러 마치 어둠이 부러질 듯 굳었습니다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하나하나 옷을 벗으시더니 150미터 지하 물을 두레박으로 빠르게 길어 올려 머리 위에서부터 부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젖꼭지가 고드름이 되어 얼어 빛났습니다 어머니의 머리가 도봉산처럼 삐쭉삐쭉 일어서 절벽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다음 얼어 터질 듯한 미끈거리는 오른손을 치켜들고 어머니 스스로의 몸에 채찍을 날리기 시작했지요 예리한 채찍은 금세 어머니의 어깨와 허벅지에 붉은 지렁이 기어가고 다시 온몸에 핏물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피까지 기절했을까 피까지 ..
2021.02.05 -
단풍ᆢ
단풍 ᆢ 석여공 익은 것들은 울긋불긋하지 감도 익으면, 뺨도 익으면, 노을빛도 익으면 익는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붉은 뺨이 되었을까 물컹물컹 으깨어지는 것들은 죄다 살아온 날들에 대해 울컥울컥 울음 참느라 토해내는 각혈인데 단풍산에 사는 그녀 목덜미가 붉은 ..
2019.11.23 -
제비꽃 머리핀...
< 사진...용학님> 제비꽃 머리핀 머리가 헌 산소에 제비꽃 한 송이 피었는데 누군가 꽂아준 머리꽃핀이어요. 죽어서도 머리에 꽃핀을 꽂고 있다니 살았을 적에 어지간이나 머리핀을 좋아했나 봐요 제비꽃 머리핀이 어울릴만한 이생의 사람 하나를 생각하고 있는데 진달래가 신갈나무 잎 사이로 얼..
2011.09.02 -
벙어리장갑
벙어리장갑 글...오탁번 여름내 어깨순 집어준 목화에서 마디마디 목화꽃이 피어나면 달콤한 목화다래 몰래 따서 먹다가 어머니한테 나는 늘 혼났다 그럴 때면 누나가 눈을 흘겼다 —겨울에 손 꽁꽁 얼어도 좋으니? 서리 내리는 가을이 성큼 오면 다래가 터지며 목화송이가 열리고 목화송이 따다가 씨..
2011.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