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흔적/시가있는 언덕배기엔...(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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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여자를 위로하네...
<사진...문화일보 김선규 기자님> 봄비가 여자를 위로하네/ 정은숙 언덕에 여자가 서있을때 바람부는 쪽으로 덧없는 하루가 또 흘러가네. 세월이 흘러가면 존재는 사라져, 그를 막아선 여자도 사라져 눈물을 흘릴 주체도 사라지네. 낮게 드리운 여자의 하늘도 숨죽여 흔들리는 풀들의 세계도 이제..
2010.04.12 -
냉이꽃이 피었다...
냉이꽃이 피었다 네가 등을 보인 뒤에 냉이꽃이 피었다 네 발자국 소리 나던 자리마다 냉이꽃이 피었다 약속도 미리 하지 않고 냉이꽃이 피었다 무엇 하러 피었나 물어보기 전에 냉이꽃이 피었다 쓸데없이 많이 냉이꽃이 피었다 내 이 아픈 게 다 낫고 나서 냉이꽃이 피었다 보일 듯 보일 듯이 냉이꽃이 피었다 너하고 둘이 나란히 앉았던 자리에 냉이꽃이 피었다 너의 집이 보이는 언덕빼기에 냉이꽃이 피었다 문득문득 울고 싶어서 냉이꽃이 피었다 눈물을 참으려다가 냉이꽃이 피었다 너도 없는데 냉이꽃이 피었다 보일 듯 보일 듯이 냉이꽃이 피었다 보일 듯 보일 듯이 냉이꽃이 피었다
2010.04.12 -
참회...
참회/ 정호승 나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나무 한그루 심은 적 없으니 죽어 새가 되어도 나뭇가지에 앉아 쉴 수 없으리 나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나무에 물 한번 준 적 없으니 죽어 흙이 되어도 나무뿌리에 가닿아 잠들지 못하리 나 어쩌면 나무 한그루 심지 않고 늙은 죄가 너무 커 죽어도 죽..
2010.04.07 -
소낙비....
소낙비2 김 문 억 장엄한 오키스트라 지휘자는 누구냐 물 막대로 현弦을 켜는 관현악의 앙상불, 연주자의 가슴에서는 태풍 일고 천둥 치고 오선지는 하늘 땅 사이에서 비 바람 번개 치며 뒤집어지며 고꾸라지며 사랑이여 이별이여 죽음이여 통곡이여 휘몰아치는 휘몰이 악장이 거듭거듭 너머가고 있다. 만취한 객석에서는 그치지 않는 박수 소리.
2010.04.02 -
계란 한판
계란 한 판/ 고영민 대낮, 골방에 처박혀 시를 쓰다가 문 밖 확성기 소리를 엿듣는다 계란... (짧은 침묵) 계란 한 판... (긴 침묵) 계란 한 판이, 삼처너언계란...(침묵)...계란 한 판 이게 전부인데, 여백의 미가 장난이 아니다 계란, 한 번 치고 침묵하는 동안 듣는 이에게 쫑긋, 귀를 세우게 한다 다시 계..
2010.04.02 -
장독대가 있던 집....
- 권 대 웅 햇빛이 강아지처럼 뒹굴다 가곤 했다 구름이 항아리 속을 기웃거리다 가곤 했다 죽어서도 할머니를 사랑했던 할아버지 지붕 위에 쑥부쟁이로 피어 피어 적막한 정오의 마당을 내려다보곤 했다 움직이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떠나가던 집 빨랫줄에 걸려 있던 구름들이 저의 옷들을 걷..
2010.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