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흔적/시가있는 언덕배기엔...(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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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능소화 몇 송이 / 토담에 걸쳐두고 주인은 개울건너 / 산밭엘 갔나 빈 마당에 / 삽살개 한 마리 기웃대는 길손에 / 낯도 안가려 능소화 작은 나팔 / 꽃 잎에 대고 누구 안계세요? / 가만히 부르고 싶다 / 내안에 아직 누군가 부르고 싶은 사람 있는가 보다 김 재란......
2011.07.25 -
봄비...
봄비/ 정소진 너를 능가할 연애 선수 아마 없지 싶다 경직된 여인의 몸을 안심시키듯 요란하게도 아니고 강하게도 아니고 낮은 목소리로 불러내는 맑은 환희 굳은 마음 푸는 일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속속들이 놓치지 않는 달달한 애무로 얼어붙어 쌩한 고집마저 녹이는 솜씨 좀 보라지 네가 일으켜 ..
2011.04.27 -
컵라면....
- 컵라면 - 소화 퇴근하신 우리 아빠 고단하신 우리 아빠 침대 속에 컵라면이 있는 줄을 알 리 없이 옷 입은 채 엎어지다 등허리가 짐짐해져 후다다닥 걷은 이불 침대 속에 컵라면이 침대 속에 컵라면이 식구라곤 어린 아들 하나밖에 없는지라 네가 여기 침대 속에 컵라면을 묻은 거니 불러 세워 다그쳤네 무얼 잘못 했는지도 알지 못한 아들 애는 성난 아빠 묻는 말에 있는 대로 대답하길 내가 했어 한 대 맞고 왜 그랬니 한 대 맞고 엉엉 울고 말았다네 아빠 아빠 우리 아빠 퇴근하면 드시라고 컵라면에 뜨거운 물 자작자작 부어놓고 혹시라도 식을까봐 침대 속에 고이고이 이불 덮어 놓았다네 나중 얘기 들은 아빠 내 아들아 미안하다 이 아빠가 잘못했다 하늘나라 먼길로 간 네 엄마가 생각난다 아들보다 큰 소리로 펑펑 울고 ..
2011.02.09 -
장식장을 버리고....
장식장을 버리고/ 박찬 장식장을 버렸습니다. 떨어져 덜컥이는 문짝을 청테이프로 길게 입막음하고 동사무소에 들러 오천 원짜리 스티커를 사 왔습니다. 저승길 노잣돈치곤 값싼 그 몸값이 안쓰러워 쉽사리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한참을 그와의 이별에 매달립니다. 모서리를 밀치고 튀어나온 못이 허리를 꺾어 작별을 고합니다. 아내와 함께 시집와 십 여년, 그 사이 고장난 어깨가 삐걱거립니다. 긁히고 벗겨져나간 살점들과 아이들의 낙서 자국,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몸은 뼈대만 앙상히 늙어갑니다. 그 안에 담아두었던 신혼의 이야기며 육아일기며 단란했던 한 가족의 앨범들. 그리움을 이야기하며 많은 날들을 지탱해온 가슴에 아쉬움이 복받쳐 오르고, 돌아오는 길 모처럼 어머니께 안부전화를 넣었습니다. 당신의 신경통은 다 나았다 ..
2010.05.17 -
섬에서 울다....
섬에서 울다 / 원재훈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은 안다 섬이 왜 바다에 홀로 떠 있는 것인지 떠나간 사람을 기다려 본 사람은 백사장에 모래알이 왜 그리 부드러운지 스스럼없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인지를 안다 섬은 그리움의 모래알 거기에서 울어 본 사람은 바다가 우주의 작은 물방울이..
2010.05.13 -
상처적 체질...
상처적 체질 / 류근 나는 빈 들녘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갈 길 가로막는 노을 따위에 흔히 다친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 나를 불러 세우던 몇 번의 가을 내가 쓰러져 새벽까지 울던 한세월 가파른 사랑 때문에 거듭 다치고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자라서는 한 번 빠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던 서편 바다..
2010.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