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는 포스팅 한 글입니다
유월 둘째주 주말엔
큰오빠 생일이었다
가족 단톡에 추카 메세지 올렸더니
산악회 버스로 오룡리(오배마을)-삼성산-시티재-호국봉-어림산코스로 등산왔다가 산악회 버스 반대방향으로
산을 넘고 넘어 오랫동안 시골버스를 기다려
엄니집에 다녀갔다고 한다ㆍ
아버지 산소도 둘러보고 묘지 터 사기문제로
동생산소 주위가 시끌벅적하던중이라 그기도 둘러보고ᆢ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 밤
엄니 거동이 불편해서 집에와 있던 나는
큰오빠가 밤새도록 목놓아 울던
그 밤이 잊혀지질 않는다
가난한 농가에 장남이란 자리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가
깜냥없는 내가 맏며느리 자리에
천지도 모르고 들어가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큰오빠의 소 울음이 가히 짐작은 가지
찢어지게 가난했던 농가
국민학교 출석을 반도 채우지 못하고
동생들 바라지만했던 맏이 울언니!
역시나 가난한 종갓집 맏며느리로 들어가
고생고생하다가 좀 살만해져서
배움에 목마르고 한이 맺혀
다시 뒤늦게나마 공부할 수있는 길을 찾던 언니는
불의의 객이 되어버렸다
어슬퍼기 짝이 없던 큰오빠는 공부외엔
잼병이라 그 시절 주산이라도 가르켜
가게 점원이라도 시켜야겠다고
학원을 보낸것이 계기가 되어
타고난 머리와 끈기와 열성으로
손꼽히는 공적자산관리전문기관에 최고자리를 끝으로
퇴직하게 되었다
순탄치 않은 가족들의 소용돌이 속에
하루도 맘 편할날이 없었을 큰오빠 속울음 ᆢ
주말 농장이며
좋아하는 등산이며
회사의 배려로 강의도 나가고
변호사 사무실도 나가며
이제는 숨가쁜 일상에서 쉼표를 찍기를 바래본다
울 친정집안에 큰 대들보!
큰 오라버니!
@저라도 속 안썩히고 잘할게요 ㅋㅋ
늘 건강 잘 챙기시구여
싸랑해여 ᆢ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