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숙한 눈짓/뜨락...(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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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감나무 잎이 볼을 붉히며 떨켜가 생겨나고 한들한들 갈바람 타고 이별의 춤사위를 하는 계절이다. 묵은 가지 끝에 매달린 붉은 감이 노을빛을 받으면 그보다 더 고울 수가 있을까 말캉해진 기분으로 분이 언니 일당들과 합류하러 가는 길엔 늦가을에 가장 좋아하는 감나무들과 하얗게 손짓하는 갈대와 산국들이 어우러져 수채화 한 폭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동네 미장원처럼 쏟아지는 수다와 뽕삘 함유 곡으로 아뜩해지는 마음으로 바다로 내달린 하루가 탱탱하게 나를 당겨 주고 있었다. 뽀도독 닦아놓은 듯한 면경같이 맑은 날의 바다는 갯바위에 부딪혀 하얀 눈처럼 흩날리던 파도 하나 없이 아득한 수평선 너머 푸른 하늘이 가득 내려앉아 있었다. 칠포 월포를 지나 강구 어시장에 내려 할머니들이 투박하게 막 썰어주는 회를 잔뜩 사고 바..
2022.10.23 -
선물
근래 시집 선물을 자주 받는다. 시집만 보면 제일 먼저 챙겨주고픈 카친 벗 수채화라고 하시던 경주 예사랑 천연염색공방 대표이신 천성순 작가님이 보내주신 진란 시집 '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머무는 문학카페에 계시는 청심 제성행 시인님의 첫 시집 '가슴으로 듣는 노래'이다. 시집만 보면 제일 먼저 챙겨주고 싶다는 그 말에 목젖이 아린다. 얼마나 고마운 마음인가 그리고 첫 시집을 엮으려면 얼마나 피와 땀과 고뇌가 서린 것인가 그 시집을 내게로 보내주신 그 고마움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사실은 그분이 카페에 시를 올리실 적마다 꼭 필사를 하곤 했다. 감성에 결이 맞다고 해야 할까 어찌 내 맘을 알고 이리 보내주셨을까 참으로 감동이다. 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 진 란 하루 종..
2022.10.13 -
가을 나들이
올해 내 생일은 제주 여행 가기로 약속하고 대충 넘어가려 했는데 약속도 없이 아들과 며느라기가 집으로 왔다. 금오산을 갈까 팔공산을 갈까 망설이다가 오랜만에 한티재로 향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하늘과 구름이 더없이 맑고 곱다. 팔공산으로 향하는 길은 시골 풍경이라 맘이 포근하다. 점심으로 꿩 샤부샤부를 먹고 구비구비 한티재에 올라 커피 테이크 아웃해서 야외에서 마시니 한결 분위기가 좋았다. 커피 마시다가 시화전 얘기가 나왔는데 며느라기가 내 시를 읽고 울었다고 했다. 왠지 그냥 뭉클했다는.... 시는 어렵고 자신이 없는데 확실한 팬 한 사람은 확보한 거 같아 내심 기분이 좋았다. 군위쪽으로 넘어가서 오랫만에 제2석굴암에 가보았다.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팔공산 연봉 북쪽 기슭..
2022.09.30 -
가을은 참 예쁘다
올해 처음 만난 꽃무릇! 그 환한 꽃등을 켜고 산모롱이를 돌아오는 나를 반겨주었다. 눈 흘길 때도 많았지만 장날이면 서랍속에 아껴두었던 브로치를 여미시고 아버지 뒤를 따라 장에 가시던 내 어머니! 그 브로치를 닮은 범부채꽃! 수수한 민낯같아 유정한 참취꽃 언제나 정겨운 개망초! 힌남노의 뜻은 라오스에서 제출한 태풍의 이름 중 하나로, 국립 보호 구역을 의미한다고 한다. 라오스 어로 돌 가시 새싹을 의미한다. 아무튼 힌남노가 할퀴고 간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하늘은 냉큼 얼굴을 바꾼다. 하긴 햇살 보시가 가득해야 상처를 딛고 일어서기도 하고 가을 수확을 하기에 요긴하다. 엄니댁과 지척인 포항의 태풍 영향이 많은 상처와 아픔을 남겼다. 그나마 엄니댁은 동생 산소가 있는 지대 높은 곳에 있는 규모가 큰 딱실..
2022.09.09 -
통영 모꼬지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떠나기 전날 밤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껏 상상해보고 설렘도 가득 보듬어 보고 하나둘 추억으로 접힐 순간들을 생각하며 꿈에 젖고 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태어나 첨 떠나보는 문학 모꼬지! 이 나이테가 되도록 수많은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이즘 머무는 문학 카페에 정이 들어서인지 그 콩닥임이 배로 되었습니다. 가입한 지 일 년이 채 안 된 까마득한 신입이지만 그저 바다가 보고 싶고 상반기 등단식에서 만났던 다정한 문우님들이 그리워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지요. 동양의 나폴리인 통영에는 동피랑 벽화마을, 해저터널(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로 1932년에 완공.) 박경리 기념관(토지와 김약국의 딸들 등과 같은 작품을 쓰신 분이시죠). 김춘수 유품전시관과 청마 문학관이 있어 꼭 한 번쯤은 다녀와 볼..
2022.08.31 -
다시 또 길에 서다
11일에 등단 식이 있어 서울에 다녀왔다. 달팽이관에 문제가 있는지 악성 길치 방향치인지라 내도록 걱정하던 아들이 동행해주었다. 낯가림도 심하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게 공포 수준이라 가슴이 벌렁벌렁. 소감 이야기하는 시간에 무슨 말을 했는지 아득하다. 어쩔 수 없는 고질병 같다. 너무 많은 인연을 갖지 말라는 말씀도 있지만, 이즘 맺어진 귀한 인연에 감사하는 맘이다. 더불어 어느 유명한 시인이 쓰신 수필이 생각난다. 50년대에 비해 워낙 문예지도 많고 계간지도 많다. 시,소설,수필 분야에서 수십 명의 신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초판 발행이 2006년도인 책이니까 지금은 훨씬 더한 신인 배출이 있을 것이다. 문학계에 한 획을 그은 그 분의 시선에선 현실적인 세태에 대해 노심초사와 무엇을 염려하는..
2022.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