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숙한 눈짓/뜨락...(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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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 아래서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욱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 해 지는 서녘 구름만이 내 차지다 동구 밖에 떠드는 애들의 소리만이 내 차지다 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찍이 먹고 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 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 달님만이 내 차지다 텔레비전 ..
2022.01.07 -
하나가 되어 가는 길
[김도경의 골목이야기](3) 4·3 유적지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에서 새해 아침을 맞다 김도경 기자 ▲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뉴스라인제주 위드 코로나 시대에도 해는 뜬다. 2022년(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해돋이 명소가 폐쇄되었다. 하지만 4인 이하 소모임, 가족 단위로 일출을 보려는 발길이 이어졌다. 별도봉 정상에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해를 기다렸다. 새해맞이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에서 희망을 떠올렸다. 간절하다는 것, 염원한다는 것, 저마다 간직한 소원이 다를지라도 한 곳을 응시하는 기운이 힘을 만들어 낼 것 같았다. 코로나19도 물러갈 것 같았다. ▲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뉴스라인제주 제주의 아침은 영하 3도의 날..
2022.01.03 -
잘 다녀와
가족 단톡에 글 올라오는 소리에 들어가 보니 먼저 간 동생네 둘째 조카 재호가 레바논으로 파병 가면서 인사 글을 올렸다. 내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급하게 전화 연결을 해서 다행히 목소리를 들었다. 열 시 출발이라니 이제 떠나간다. 구월에 돌아온다는데‥ 단톡에 올라 온 울엄니 글 한 줄에 맘이 베인다. 씩씩하게 자신 있게 뜻 한 바 있어 가는 거니 잘 해내리라 믿고 싶다. 제 글 읽는 모든 분들에게 울 조카가 건강하게 잘 다녀올 수 있게 따뜻한 기도 부탁드립니다.
2021.12.27 -
동지
동지 ' 팥죽, 그 붉은빛으로 역병이 사라지길 ‥ 오늘 아침 읽은 글 한 구절중 젤 와닿는다 그만큼 절실한 맘일 게다 시간대와는 상관없이 눈을 뜨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글을 읽는다 몸도 마음도 깨우는 시간이다 오늘은 동짓날 그 붉은빛으로 역병을 타파해야 하는데 죽 끓일 열정은 없고 그림 죽으로 때운다 내겐 잊지 못할 동짓날의 풍경 한 컷이 있다 가난한 농가의 딸로 아래위 오빠들과 남동생에게 끼여 여고 진학이 어려웠던 시절 우여곡절 끝에 시험 치게 되었고 포항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수험생 합격 발표가 흘러나왔다 언니랑 나는 두 군대는 가슴을 안고 라디오에 귀 기울이고 울 엄니는 무심히 팥죽 끓이시느라 군불 지피시던 중이었다 613번 수험번호 600번 들어서자 줄줄이 떨어져 애간장이 녹아들던 ‥ 그리곤..
2021.12.22 -
벙어리 장갑
벙어리 장갑 삶의 질곡을 따라 아슬아슬 곧추세우고 논밭으로 공장으로 분주하던 내 엄니 날 선 피곤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던 날 급정거 통근차에 쓰러져 마디마디 피고름 맺히고 득달같은 세월에 떠밀려 살고 지고 살고 지고 다시 또 왼손 마비 어이하나 어이할꼬 끼워지지 않는 장갑에 겨우 스친 생각 하나 가난한 손모아장갑 내 엄니 전동차, 유모차에 먼지만 쌓여가네
2021.12.17 -
짝사랑, 그 언저리엔...
깨톡이 울렸다. 불금 잘 보내라는... 언젠가 글을 써 올렸던 ' 아카시 눈물' 기억하시는지 그 남주의 톡이다. 집 근처에 살고 있는 고향 남친을 만나면서 궁금하던 짝사랑은 어디메쯤 살고 있을까. 물어본 게 계기가 되어 가끔 연락하며 지내게 되었다. 콩닥콩닥 가슴 뛰게 하던 여고시절의 그 가슴 설레던 샤프함은 어디로 간 건지 길웅은 구수한 사투리에 나처럼 잘 늙어가고 있는 듯하다. 여고졸업반 때 생에 첫 미팅을 하고 헤어진 남친이 늘 궁금해서 우찌 우찌 연결고리가 이어져 만났다가 너무 실망한 탓에 다신 풋정에 속지 말자 다짐한 터라 냉큼 만나지 않고 오랜 벗처럼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나 나누는 동성친구 정도로 거리 두기 하고 싶다. 따지고 보면 나만 실망이었을까? 상대방 맘도 생각해줘야 하는 건 아닌가 말..
2021.12.10